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네치아-동로마 무역 전쟁 (문단 편집) === 발단 === 이미 상당한 자치를 누리던 베네치아는 [[만지케르트 전투]]와 [[노르만족]]의 로마령 남이탈리아 점령[* 둘은 거의 비슷한 시점에 일어났다.]으로 로마인들이 서방에 대한 통제권을 잃자 거의 완벽하게 독립하게 되었다. 1081년 집권한 [[알렉시오스 1세]]는 [[디라히온 공방전]]에서 노르만족의 당면한 침략을 막기 위해 베네치아군의 힘이 필요했고, 그들을 끌어들이기위해 엄청난 무역 이권을 넘기는 '''[[금인칙서]]'''를 발부했다. 주요 내용으로는 >1. 무역관세의 상당한 감세 혹은 '''면제''' >2. 기존에 금지되어 있던 금, 목재등을 비롯한 전략자원의 교역 허가 >3. 주요 항구의 개항 >4.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조계지 임대 >5. 베네치아의 [[베네치아 도제|통령]]을 비롯한 공훈자들에게 칭호 부여 이는 지금까지 어떤 도시국가도 가지지 못한 엄청난 권한이었는데, 바로 황도 [[콘스탄티노플]]에 조계지를 수여받고, [[스파르타|라케다이몬]], [[코린토스]]등의 주요 항구에 대한 개항을 허가받았으며, 목재, 금, 철 등의 전략자원에 대한 수입이 가능하게되는 것이었다. 특히 이중에서 관세 철회, 즉 [[FTA]]는 베네치아에 엄청난 특수를 가져다 주었다. 베네치아는 환영하며 바로 행동에 들어갔는데, [[디라히온 공방전]]에서 동로마와 동맹을 맺고는 800여명의 기사와 수백척의 함대를 지원했다. 육전이 패배로 점철되는 동안에도 베네치아 함대는 노르만 함대를 아드리아해 고깃밥으로 만들며 적을 끈질기게 괴롭혔고, 결국 [[보에몽 1세|보에몽]]의 전쟁수행력을 바닥내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. 이때까지의 내용은 장기적으로는 문제의 소지를 남겼지만 그래도 양국에 윈윈에 가까웠다. 베네치아도 아드리아해 남부에 노르만 왕국이 생기면 무역이 힘들어질게 뻔했기 때문. 그러나 문제는 로마제국이 [[1차 십자군]] 이후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 이후에서부터 발생했다. 1110년대 계속된 [[솔리두스|히피르피론]] 통화정책이 성공을 거두고 다시 중흥기를 맞이하기 시작하자, 주요 수출품인 유리, 에나멜, 비단, 도기 등이 베네치아에 의해 독점거래되기 시작했고, 과도하게 낮춰진 관세율은 동로마 제국의 상공인들에게 경쟁의 부담을 지우게 되었으며, [[제노아]], [[피사]] 등의 다른 상업 공화국들이 같은 특권을 주장하기 시작하는 좋지 못한 선례를 남기기 시작했다. [[알렉시오스 1세]] 이후, 어느 정도 안정적인 기반으로 제위를 시작한 [[요안니스 2세]]는 상인들과 시전 상인들의 지속적인 시정 요구에 직면했고, 그 또한 베네치아가 에게 해의 무역을 장악하는 상황을 좌시할 수 없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